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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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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은보선생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2호(1985.6.28) 호원동 산 91번지 망월사 부근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2호(1986.3.14) 신곡동 산 33번지 윤은보 선생은 조선 중종때의 문신으로 자는 상경, 본관은 해평이다.
    성종 25년(1494) 별시문과의 병과로 급제, 이듬해 교검으로 춘추관 기사관을 겸직,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연산군 4년(1497) 예관때 장류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와 정언, 지평, 집의 등을 역임하고, 중종원년(1506) 춘추관 편집관이 되어 "연산군 일기"편찬에 참여했다. 1509년 대마도 경차관으로 도주에게 왜구의 침범을 금하도록 요청했고, 1513년 경상도 암행어사 이후 부제학,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이어 이조참판, 대사헌, 공조참판, 이조판서, 평안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 호조판서, 지중추부사, 병조판서, 한성부판윤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1533년 좌찬성, 1535년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지낸 뒤 기로소에 들어 갔으며, 중종 38년(1543) 왕명으로 "대전후속록"을 편찬했다. 시호는 정성이다.
    묘소입구에 신도비가 있는데 귀부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서북향했고,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문은 횡서전자로 "정성공신도비명"이란 제명과 가정 30년(1551, 명종 6)이라고 건립 연대를 밝혔다. 비문은 홍언필 찬, 신효중 서, 박공량 전으로 되어있다. 비의 재료는 화강암이고 높이는 2.5m, 넓이는 91cm, 두께는 25.5cm이다.
  • 인성군묘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3호 (1986.3.14) 금오동 산 23-1번지 인성군 이공(1588~1628)은 선조의 제7자로 호는 백인당이고, 어머니는 정빈 민씨이다.
    선조 32년(1599) 인성군에 봉해지고 사옹원 종부시의 도제조와 종친부에 재직하면서 관기를 확립했고, 광해군때 인목대비의 폐위를 주장했다. 이로 인하여 인조 원년(1623) 인조반정때 이귀 등에 의해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왕의 불허로 무사했다. 이듬해 그는 이괄의 난 때 적당 가담의 죄로 한때 유배되었고, 인조 6년(1628)유효립이 대북의 잔당을 규합, 모반을 기도할 때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여 진도에 유배, 곧 자살을 강요받았다. 인조 15년(1637)에 복관되었고, 시호는 효민이다.
    묘 주위에는 곡담을 두르고, 묘 하단부에는 호석을 설치했으며, 중앙에는 묘비와 상석, 그 좌우에는 망주석, 석인상, 문인상이 서 있다. 또 하나의 묘비는 숙종 7년(1681)에 건립된 것으로 장방형 대석과 객석을 갖추었고, 4면에 걸쳐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부인 해평윤씨와 합장된 이 묘의 직경은 4.9m, 높이는 2.5m이다.
  • 해원군묘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4호(1986.3.14) 금오동 산 23-1번지 해원군 이건은 선조의 제7자인 인성군의 셋째 아들로 광해군 6년(1614)에 출생, 맏형 해평군의 폐질로 습작하여 종자가 되었다. 인성군 배소에서 시봉하였고 부친의 하세 후, 신원되어 현록서작을 받았다. 49세를 일기로 하세했는데, 시호는 충효이며, 유고 "규창집"3권이 적상사고에 있었다.
    부인 "풍산심씨"와 합장한 묘 주위에는 곡담을 둘렀고, 묘 하단부에는 호석을 설치했으며, 묘 앞 중앙에는 묘갈비와 상석, 향로대를 그 좌우에는 각각 석인, 망주석,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해원군이 하세한지 약 50년이 지난 뒤인 숙종 38년(1712)에 건립된 것이다. 묘의 직경은 6.2m, 높이는 2.3m이다. 한편, 묘에 오르기 전 오른쪽 산 기슭에 위치한 신도비는 묘비보다 17년 뒤인 영조 5년(1729)에 세운 것으로 대석위에 신석을 꽂고 비두에 객석을 얹고 있는 통식이다.
    대석 측면에는 화문을, 상면에는 연화문을 장식했다. 옥개석은 하면에 서까래, 낙수면에는 골기와를 조각했으며 팔작지붕 양식을 표현하고 있다. 신도비의 실측지는 높이 2.19m, 폭 90cm, 두께 36cm이다.
  • 정빈민씨묘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5호(1986.3.14) 금오동 산 31-2번지 정빈 민씨는 선조의 후궁이며, 인성군의 생모로서 명종 22년(1567)에 출생했다.
    14세에 간택 입궁하여 빈위에 올랐으며, 특히 예절과 덕행이 뛰어나 선조도 갓을 쓰지 않고는 민씨를 대할 수 없었다고 한다. 60세에 하세했는데, 소생으로는 인성군 공, 인흥군 영과 정인 . 정선. 정근 옹주등 2남 3녀를 두었다.
    분묘 주위에는 곡장을 두르고 묘 하단에는 호석을 설치했으며, 묘 앞 중앙부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대가 놓였고, 좌우에는 석인 망주석,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뒷면에 새긴 "숭정기원 무진후 오십이년기미"의 기록으로 보아 숙종 5년(1679)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묘의 직경은 6m, 높이 2m이며, 묘비는 대리석으로 높이 139cm, 폭 59cm, 두께 18.5cm이다.
  • 화릉군묘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6호(1986.3.14) 금오동 산 31번지 인성군 공의 제3자인 해원군의 여섯째 아들로 현종 원년(1660)에 출생하여 영조 9년(1733) 74세의 일기로 하세했다. 작위는 현록이며, 도총부 도사를 역임했고, 효자정문을 받았다. 분묘는 화릉군과 부인 안동 김씨의 묘가 나란히 있으며, 묘 둘레는 낮은 호석을 둘렀고 쌍분 앞 중앙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대를 배치했다.
    묘비가 꽂힌 대석은 장방형으로 연화문을 장식했고, 탄흔이 역력한 비신 뒷면에 음각된 "황명숭정기원후 재갑인오월일"의 기록으로 보아 묘비는 화릉군이 하세한 다음해인 영조 10년(1734)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묘의 직경은 5m, 높이는 1.9m이며, 묘비의 실측치는 높이 134cm, 폭 58cm, 두께는 24.5cm이다. 신도비는 묘소 앞 30m지점 언덕 아래의 부대내에 위치해 있다.
  • 신향묘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7호(1986.3.14) 신곡동 74번지 신항의 자는 용이, 본관은 고령이다. 일찍부터 뛰어난 시재를 보였으며, 14세때인 성종 21년(1490) 성종의 딸 혜숙옹주와 결혼하여 고원위에 봉해졌다.
    연산군 5년(1499) 부총관이 되고 그 후 귀후서 제조, 혜민서 제조를 역임했으나, 연산군 10년(1504) 그를 시기하는 임숭재의 모함으로 위계를 빼앗기고 조정의 출입을 금지 당했다. 중종 반정(1506) 후 봉헌대부가 되었으나, 31세를 일기로 요절했다. 시호는 문효이다.
    묘는 부인과 함께 쌍분으로 되어 안상이 조각된 비좌와 이수가 있다. 묘 앞 중앙에는 상석 향로석을 두었고 장명등, 하대석을 둘렀으며, 간석 네 귀에는 동자주를 양각하여 그 사이에 안상 1구씩을 조각했다. 화사석은 4각으로 4면에 방형화창을 두었고, 좌우로 망주석, 무관석이 배치되었다. 묘 아래 20m 전방에 위치한 신도비는 귀부위에 이수를 갖춘 비신을 세웠다.
  • 김구선생 필적암각문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8호(1986. 3. 14) 호원동 산 89번지 의정부시 도봉산 회룡사 서쪽에 석굴암이 있다. 천연석굴로 돼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에 무학대사와 함께 이곳에서 3년간 대업 경륜을 펴던 곳이라 한다.
    이곳은 또한, 백범선생이 상해로 망명하기 전에 한때 피신하였던 곳으로, 해방 후에도 선생께서 이곳에 자주 들러 소요하며 고금을 회상하곤 했다. 1948년 가을 어느날, 선생께서 오시자 당시 언론인 남상도외 7인이 『석굴암 불 무자 중추 유차김구(石窟庵 佛 戊子 仲秋 遊此金九)』라는 친필을 받게 된다.
    그들은 이를 오래 기념코자 이듬해 봄부터 친필명문을 조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1949년 6월 26일 오후 3시에 이곳 석굴암에 백범 선생을 모시고 명문완공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그날 선생은 참변을 당했다. 완공식 준비를 하고 있던 남씨 일행은 선생의 비보를 듣고 급히 경교장으로 달려 갔으나, 선혈이 낭자한 시신 옆에는 임시정부 요인 몇 사람만 흐느끼고 있을 뿐이다. 70평생 오로지 조국광복만을 위하여 싸워온 민족의 태양 백범 김구의 영면! 온 국민의 비통과 함께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전체의 높이는 3.4m이고 탑의 몸통 둘레는 3.1m이다. 탑모양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기단부위에 구형 탑신을 안치하고 옥개석과 상륜부로 구성돼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과 대석으로 구성돼 있는데 지대석은 팔각형 삼단의 일석으로 조성되고 높이가 80cm이다. 그리고 그 위에 괴임대를 놓았다.
    서울에서 장례를 치르는 동안 의정부에서는 선생의 피묻은 조끼조각을 시신으로 삼고, 당시 양주국민학교 교정에서 영결식을 거행한 후 이곳 석굴암에 선생의 위패를 모시었으며, 이곳을 백범사라 이름하고 백범사 주관위원회에서는 봄, 가을로 배향하고 있다.
  • 함태영선생묘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9호(1986. 3. 14) 자일동 산 3-2번지 함태영 선생(1873~1964)은 근대 한국이 낳은 독립운동가, 정치가, 종교인이다.
    무산 출신으로 대한제국 시절에 법관양성소를 나와 한성재판소 검사때인 광무 2년(1898), 이상재등 독립협회의 회원들을 무죄로 석방했다가 파면당했으며, 그 후 대심원, 복심법원의 판사를 역임했다. 3.1 독립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가 체포, 3년 옥고를 치렀으며, 1921년 목사가 되었다. 해방 후 1949년 제2대 심계원장, 이어 한국신학대학장, 1952년 제3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으며, 장례는 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묘의 하단은 20개의 판석으로 병석을 둘렀으며, 전후면 중앙에는 각기 무궁화와 십자가를 조각했다. 묘 앞에 놓인 상석 이외의 다른 석물은 없고, 봉분은 높이 2m, 둘레는 17.4m이다.
  • 화창군묘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10호(1986. 3. 14) 금오동 산 23번지 화창군은 인성군의 제3자 해원군의 아들이니 선조의 증손이 된다. 인조 18년(1640)에 출생하여 47세의 일기를 마쳤다.
    현재 분묘가 많이 훼손되어 있고 특히, 묘역을 보호하는 담장은 완전히 파손되었다. 묘비는 잘 보존되어 있어, "有明朝鮮王曾孫花昌君 諱沇之墓 君夫人光山盧氏부좌"라는 삼행의 음각명이 뚜렷하다. 뒷면에는 "崇禎紀元後再戊午十月日立 "이라 하였으니 1738년이 된다.
    화창군이 하세하고 난 50여년 후 건립한 것으로 추측된다. 장방형의 대석에는 측면에 연주문 기둥이 우주 대신 음각되었고, 중간에도 3주가 모각되어 있다. 또한 상면의 비좌에는 복연이 조식되었는데 판내에 고사리문 등의 장식이 있다. 이들 문양은 연대가 뚜렷하여 조선시대 조각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묘비의 높이는 131cm, 폭 59.5cm, 두께 21.5cm이다. 비명중에 장지를 " "이라 하였으니, 260여년 전 이곳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다른 석물은 없고, 봉분은 높이 2m, 둘레는 17.4m이다.
  • 경명군묘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11호(1986. 3. 14) 신곡동 산 25의 1 의정부시향토유적 제11호이다. 조선 성종의 아홉째 서자로, 남양홍씨의 소생인 경명군(景明君) 이침(李忱, 1489~1552)의 묘이다. 봉분의 높이는 2.1m, 둘레는 17m이다. 묘 주변에는 이수가 조각된 묘비와 상석·향로석·문인상·망주석·장명등이 배치되었다. 묘비는 1527년 전후로 세워졌으며 높이는 1.28m, 폭은 53cm이다. 근처에는 경명군의 두 아들을 비롯해 후손들의 묘 13기가 있다. 의정부시 신곡동에는 새말 또는 신촌(新村)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는데 경명군의 후손들이 마을을 새로 개척해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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